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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스크랩] 4년만의 첫 직장 석달만에 쫓겨나

럭키맨 운수 2008. 12. 5. 10:36

4년만의 첫 직장 석달만에 쫓겨나

서울신문 | 기사입력 2008.12.05 04:27 | 최종수정 2008.12.05 09:16

[서울신문]

"내가 뭐 잘못했노. 시험은 만날 2점차로 떨어지고, 마음 고쳐먹고 눈 높이 낮춰 힘들게 취직해서 죽도록 일했는데 3개월만에 짤리고…. 이게 뭐꼬." 4일 그는 끝내 눈물을 떨궜다. 2004년 2월 지방 사립 K대 토목과를 평점 4.0으로 졸업한 설찬희(30·무직)씨. 졸업과 동시에 갑자기 들이닥친 취업대란에 9급 지방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그 해 졸업한 50명의 토목과 동기 중 40명이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었다.

 

택시운전을 하면서도 "아들, 어디 가서 '꿀리면' 안 된다.'고 비싼 등록금에 용돈까지 대준 아버지에게 설씨는 더 이상 손 내밀 염치가 없었다. 그래서 독서실 총무 아르바이트,주말에는 '전공을 살려' 건설현장에 인부로 나가 생활비를 벌었다.

●공시 도전 8회 실패

수험생활을 시작한 2004년. 경남 창원시 공무원시험의 합격선에 단 2점이 모자라 떨어진 설씨는 '창원은 경쟁률이 높다.'는 생각에 이듬해인 2005년 경남 거제시에 지원했다.

또 2점차 낙방. 거제시도 만만치 않았다. 그 해에는 서울에 올라와 중앙 정부직에도 도전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배가 아파 시간 조절에 실패했다. 이번엔 1점차.

수험생활 3년째인 2006년. 창원시 시험을 치고 나서 '이번엔 확실하다.'고 믿었는데 또 2점차.포기하고 싶었다.설씨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신세한탄을 늘어놨다. 그래도 '남자'라서 울지는 않았다. 마음을 다잡고 경북도 시험에 임했다. 또 2점차. 머릿속에는 '설찬희 2점, 설찬희 2점….'이라는 자학만 가득했다.

2007년. 창원과 경북 둘 다 2점이 모자랐다.'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올해 경북 시험을 쳤지만 또 2점차. 오는 2009년에는 공무원 신규채용을 줄인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느새 서른인 설씨는 '더 이상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에 공무원에 미련을 버리고 눈높이를 낮춰 취직에 도전했다.

100곳이 넘는 중소제조업체·건설업체에 원서를 넣었고 수십번 면접을 봤다. 천신만고 끝에 지난 9월 콘크리트 블록을 생산하는 공장에 취직했다.

비록 수습사원이지만 판로를 뚫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자존심 구겨가며 20여명의 공무원 친구들에게 전화까지 했다. 졸업 후 4년 7개월. 첫 직장에서 첫 월급으로 140만원을 받았다. 너무 기뻤다.

● "눈 낮춰도 일자리 없어"

10월부터 들이닥친 불황에 거래는 끊기고 재고는 쌓였다. 3개월의 수습기간이 끝나갈 무렵인 지난 11월28일 설씨는 결국 회사에서 '잘렸다'.

 

고용보험, 실업급여의 혜택도 못 받은 설씨는 "그래도 사장 안 밉다. 아들 같은 수습사원 손잡으며 미안하다며 고개숙인 채 내쫓아야 하는 사장은 얼마나 부끄럽겠노."라고 말했다. 설씨는 '스낵카를 끌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자재가격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3일 서울에 올라왔다.


하지만 만만찮은 스낵카 가격과 노점 펼 자리마저 구하기 힘든 현실만 확인했다." 4년제 대학 나오고 노점 끄는 거 부끄럽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하던 그는 "도대체 어디까지 눈을 낮춰야 하노."라며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마주 앉은 친구도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설씨는 대기업 건설사 지방본부의 면접을 봐야 한다며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배웅하는 친구를 돌아보며 말했다.

"지방대 나오고 나이도 많은 나를 대기업이 뽑아주겠나? 기대는 없다. 그래도 희망은 안 버린다. 너무 걱정마라 친구야."

 

장형우기자님의 기사입니다. 읽고나니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