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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모음

유관순 열사의 친구 남동순 할머니

럭키맨 운수 2015. 5. 1. 10:50

2010년 4월 3일 유관순 열사의 친구였던 남동순 할머니가 별세하셨습니다.
또한 할머니는 신익희 선생님께서 이끌었던 독립운동 단체인 7인의 결사대의 유일한 홍일점이기도 했죠.
유관순 열사와 어릴 적부터 소꿉 친구였던 그녀도 역시 3.1 만세 운동을 벌였다가 붙잡혀 온갖 고문을 당했었습니다.

 

3.1 만세 운동 때 서대문 형무소에 끌려가 일본놈들한테 매섭게 맞아 그렇지.
같이 운동한 사람들 이름을 대라고 콧구멍에 고춧가루물을 들이부어도 절대 안 댔어.
그 죽일 놈들이 내가 이름을 대도 때리고 안 대도 때릴 게 뻔하거든.
나 하나 죽으면 그만이다, 하고 이를 악물었지.

 

함께 고문을 받던 두 사람은 서로를 격려했지만 유관순 열사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새암(샘) 많고 찰지고 영특하기 그지 없는 소녀였지.
열아홉이면 얼마나 이쁠 때야. 그런데 사지가 찢어지도록 고문을 당하고 죽었으니.
내가 살아남은 건 관순이가 못다한 일 하라고 하늘이 내리신 명이야.
그래서 교복을 입은 채로 7인의 결사대로 간 거지.
- 남동순 할머니 인터뷰 中 -

 

그렇게 7인의 결사대에 유일한 여성대원이었던 그녀는 독립군에 독립 자금 전달, 정보 수집 심지어 무장 투쟁까지 마다치 않았습니다.


무서운 게 어디 있어. 총이 없어 칼을 썼지. 일본놈들 주재소, 경찰서 습격해 그냥 때려부수고.
배고픈 건 말도 못해. 가랑잎은 사발이고 싸릿가지는 젓가락인데, 먹을 게 있어야지.
운 좋으면 배추를 뜯어 소금에 고춧가루 넣어 죽을 끓여. 모자라면 대장이랑 나는 굶었어.
대신 솔 이파리를 씹어먹거나 불린 날콩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먹었지.
- 남동순 할머니 인터뷰 中 -

 

그리고 그렇게 염원하던 광복절. 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일에 어안이 벙벙하였다고 합니다.

 

광복? 생각도 못했지. 14일 밤에도 난 작전 중이었어. 일본 주재소에 잡혀간 동지를 꺼내오는 일이었지.
이튿날 우리나라가 광복됐다는 뉴스가 나와 뒤로 벌렁 자빠졌어.
가회동 집에서 맨발로 뛰쳐나가 종로까지 달려가면서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어.
내 나라, 아니 내 동무 관순의 나라가 사무치게 자랑스러워서...
- 남동순 할머니 인터뷰 中 -


그렇게 꿈을 이룬 그녀는 1953년 한미고아원을 세워 1000여명의 전쟁고아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리고 유관순 열사의 당시 모습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마지막 생존자였던 남복순 할머니는
2007년 유관순 열사의 표준영정 제작에 참여해 얼굴, 생김새, 체형, 복식 등을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유족들은 고인의 뜻에 따라 별세 사실을 발표하지 않고, 독립묘지 대신 가족 묘원에 안장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남동순 할머니 그 곳에서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독립운동가분들을 잊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