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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이야기/발자취 & 생활 이야기

<한국의 대리들> 책에서 팀장들이 말하는 우리 부서 최고의 대리들

럭키맨 운수 2009. 1. 27. 13:11

○그룹 기획팀 ㄱ팀장

 

본부장과의 미팅을 앞둔 ㄱ팀장은 A대리에게 회의자료를 맡겼다. ㄱ팀장은 "내가 생각하기에 이달 우리 부서의 현안은 다음의 3가지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하고 "이 현안에 맞추어 문제점을 파악하여 정리하고 개선 방향을 만들어보라"고 지시했다.

다음날 A대리는 팀장이 말한 3가지 현안에 2가지를 더해 모두 5가지 현안을 꼽아 회의자료를 작성해 왔다. 실무자의 감각을 더해 2가지를 더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개선점만 써온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행 계획까지 첨부해 왔다. A대리는 또한 보고서 양식을 약간 바꾸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쓸 내용을 모두 담기 위해서는 양식을 약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정말 일을 못하는 경우는 아예 시킨 일도 제대로 듣지 못해 지적한 항목을 빠뜨릴 텐데 자기가 알아서 문제를 더 찾아냈다. 문서 양식을 바꾸자는 제안도 의미 있다. 일에서 양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양식대로만 하지 않고 쓸 내용을 중시한 일 중심의 사고였다. 이런 경우 팀장은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또다른 ○그룹 ㄴ팀장

 

ㄴ팀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고위 임원이 ㄴ팀장을 찾았다. ㄴ팀장은 교육과 인사를 총괄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임원은 인사 쪽에 근무하는 B대리에게 교육쪽 업무에 대해 물었다.

"지난번에 이 팀에서 말한 사내 강연교육 일정은 어떻게 확정되었나?"

"다음날 둘째 주부터 본부별로 나눠서 모두 3차례 실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B대리는 정확하게 대답을 했다. 물론 임원 입장에서는 문득 생각이 나서 궁금한 일을 확인하는 수준이었고, B대리도 단순한 내용이었으므로 대답할 수 있었다. 그리고 팀장처럼 팀 전반을 아우르지 않는 팀원 수준에서는 대답을 못 해도 흠은 아니다. 그런데 ㄴ팀장의 처지에서 보면 똘똘한 부하 덕분에 임원실을 들락거릴 일이 한 번 줄어든 셈이다. 다른 대리가 대답을 못했다면 팀장이 다시 한번 임원실에 올라갔어야 했기 때문이다. 주변 일에도 관심을 갖고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팀내 현안을 잘 알고 있어야 할 수 있는 대답이라는 점에서 팀장은 B대리를 높이 평가했다.

 

한 이동통신업체 홍보팀 ㄷ팀장

 

2005년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이 업체는 새로운 홍보를 시도하게 되었고, ㄷ팀장은 C대리에게 새 홍보기획을 짜보라고 지시했다. 주문사항은 "가정의 달 행사에 우리 회사에 대한 신뢰 이미지를 더하는 방향으로 기획을 수힙하라"는 것이었다.

C대리는 일단 홍보차원에서 활용할 사내 자원을 찾았다. 회사의 여러 가지 활동 가운데 홍보 관점에서 쓸 수 있는 것을 골라내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회사가 베트남에 기형아 무료수술 의료지원을 해 왔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홍보 꺼리'가 된다는 판단에 다음에는 베트남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알아보니 2005년은 베트남 종전 40주년이었고, 한국과 베트남이 수료를 맺은 지 30년이 되는 해였다. 그리고 더욱 더 맞아떨어지는 것은 기형아 수술 지원을 시작한 지 꼭 10년이 되는 해였다. 이런 내용을 잘 알리면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기업의 우수한 사회참여 사례로 좋은 평가를 내릴 만하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C대리는 단순한 홍보 전략이 아니라 국내 언론과 외신 등 분야에 따른 홍보 전략을 달리 짜서 기안서를 재출했다. 분야별로 효과적인 홍보 방법을 따로 제안한 것은 물론이다. "이 정도면 과장이 해도 똑같은 수준입니다. 일에 대해 이 친구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그 양이 보이는 것이지요."

ㄷ팀장이 C대리의 업무처리를 높이 평가한 이유는 이렇다. 우선 베트남이란 홍보 꺼리를 찾아낸 점이다. 회사가 하는 일만 죽 훑어보기만 하면 찾을 수 있는 것 아니야고 생각하기 쉽지만 ㄷ팀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직원이 수천 명인 회사에서 다른 부서의 일을 전반적으로 모두 확인하기란 보통 일이 아니다. 곧 C대리가 평소 인맥관리와 친분으로 이미 분야별 '정보원'을 두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다른 부서 직원들 중 누구를 통해 정보를 얻어야 하는지 접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그런 일이 가능한 인적 네트워크를 미리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베트남'이란 주제를 잡은 것도 이렇게 뽑아낸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분석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베트남으로 기안을 올린 것은 베트남을 종합적,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C대리가 대리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능력인 '창의력'을 보여준 부분은 그가 세운 홍보 테마였다. C대리는 3가지 홍보 테마 후보를 제출했다.

 

첫째, 베트남에 세워진 인술 10년

둘째, 자사의 베트남 진출 현황

셋째, 메콩 델타를 타고 흐르는 한류의 바람

 

이 가운데 첫 번째 안은 베트남을 고른 이상 누구나 낼 수 있는 아이디어다. 두 번째 안도 마찬가지다. 바로 세 번째 안이 C대리의 창의성을 보여준다. C대리는 이 안에 대해 일단 현지에서 인기 있는 연예인들을 연계하는 한편, 이동통신 업체로서 무선 인터넷 등 콘텐츠 부문에서의  한류 바람으로 테마를 잡았다. 곧 기형아 수술을 지원하는 인술이 바람을 일으키고 이 바람이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컨텐츠 바람으로 이어지며, 거시적 차원에서 한류 바람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홍보안의 요지였다.

듣고 나면 누구나 확장시킬 수 있는 카피 같지만 실제로 일을 하다보면 이런 기획이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먼저 내기가 쉽지 않다고 ㄷ팀장은 평가했다.

이 기획안을 놓고 ㄷ팀장이 높이 평가한 중요한 점이 하나 더 있다.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 바로 C대리가 팀내 선배들을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제가 옆에서 지켜보니 팀 선배들에게 '다른 팀 상황을 몰라서 그러는데 선배들이 좀 알아봐 달라'고 열심히 부탁을 하더군요. 회사에 대해 더 많이 아는 선배들을 통하는 게 더 정확한 것은 당연했지요."

ㄷ팀장은 왜 이 정도의 업무처리가 우수한 것이라고 보았을까? 반대의 경우랄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상상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먼저 똑같은 경우로 가정해 보았을 때 '최악의 대리'는 파악해 온 사내 정보자료의 양이 적다. 그러면 팀장은 다시 지시하거나 물어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악순환이 이어진다.

"해외 사업 쪽에는 홍보할 만한 꺼리들이 없던가?"

"그쪽은 저한테 말을 잘 안 해주던데요."

"그러면 자네는 그 부서에 아는 사람도 없나?"

"제가 직급이 낮아서..."

'야, 네가 지금 회사생활 몇 년째인데 사내 사람들도 몰라!'(속마음)

업무처리 수준이 낮으니 뽑아낸 자료의 수준도 낮을 수밖에 없다. 요리를 할 재료에서부터 수준의 차이가 나니 요리맛이 어떨지야 먹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결국 핵심 포인트는 '자기 직급보다 높게 일하라'는 요령으로 되돌아간다. 자신이 대리라고 대리들만 상대해서는 업무수준이 높아지기 어렵다. 게다가 '최악의 대리'는 같은 팀 선배들을 활용해 정보를 수집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대리들은 아무리 뛰어나도 선배들보다는 못합니다. 일을 잘 못하는 친구들을 보면 선배들을 잘 보지 않더군요."

팀장급들이 가장 나쁘게 평가하는 대리들은 독단적인 대리다. 이럴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본인 자신이 그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은 커녕 인식도 못하기 쉽다는 점이다.

"자기 혼자 일은 열심히 하는데 결과는 시원찮게 되지요. 일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정당한 대접을 요구하게 되지만, 팀장의 입장에서 보면 남의 다리를 긁고 다니는 것으로 볼 수밖에요. 옆의 동료조차 활용하지 못하는데 일이 잘 되겠습니까?"